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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자와의 위인

우에스기 켄신
우에스기 켄신
요네자와(米沢)시 우에스기 박물관(上杉博物館)
요네자와 번(영)의 영주의 원조입니다。
1530년、에치고쿠니에서 나가오 다메카게의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아명은 도라치요。
15세때 관례(성인식)를 하고、1553년、에치고쿠니의 영주가 되었습니다。
1561년、우에스기 노리마사의 부탁을 받아 우에스기씨의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우에스기 켄신은 전략의 뛰어난、대장으로서의 강인함등、지금도 전국 무장의 대표로서 인기가 있습니다。
1578년、49세의 젊은 나이에 죽었지만、그 유해는 옻으로 튼튼하게 보호하여、후계자인 우에스기 가게카츠에 의해 아이즈、요네자와로 옮겨 졌습니다。요네자와에서 처음엔 성내에 안치되었지만、1876년、현재의 우에스기 고뵤소로 옮겨졌습니다。이묘는 지금도、요네자와 시민에 의해 소중하게 지켜지고 있습니다。
우에스기 가게카츠
우에스기 가게카츠
요네자와의 초대 영주입니다。
1555년에 에치고쿠니의 나가오 마사카게의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우에스기 켄신의 조카가 됩니다。마사카게의 사후、켄신의 후계자로서 양자가 되었습니다。1579년、우에스기가의 당주(영주)가 되다。도요토미 히데요시 (풍신수길)에게 인정받아、아이즈120만석을 다스리는 영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세키가하라의 전투에 패배、요네자와 번(영)30만석으로 이동(강등) 되었습니다。그때、한사람도 리스트러(명예퇴직) 시키지않고、희망하는 가신 전원을 데리고 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네자와성으로 이주한 가게카츠는、가신 나오에 카네츠쿠와 함께、조속한 마을 만들기와 감봉으로 인해 어렵게된 번(영)의 재정을 재 정비에 힘 썼습니다。동시에 도쿠가와 막부 출범에도 힘을 썼습니다。
이렇게 해서、무장으로도 영주로도 공적을 남긴 가게카츠는、1623년、요네자와성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향년69세。문무를 겸비한 뛰어난 무장으로서、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인정하고 경의를 표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오에 카네츠구
나오에 카네츠구
요네자와(米沢)시 우에스기 박물관(上杉博物館)
우에스기 가게카츠를 평생동안 섬기며、요네자와의 쵸카마치(성 주변마을)를 만든 무장입니다。
1566년、어려서부터 총명했던 카네츠구는、6세때 우에스기 가게카츠의 어머니 센토인을 처음 만나、가게카츠의 시중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우에스기 켄신의 양자가 된 가게카츠를 따라、카네츠구도 함께 가스가산성 에 들어가、켄신의 밑에서、전장에서의 마음가짐등 여러가지 일들을 배웠습 니다。
세키가하라전투 패전후、가게카츠와 함께 요네자와로 이주、가신의 주거 확보를 위해 마을 만들기를 시작했습니다。요네자와성을 신축、테라마치(절 마을)、상인,장인의 마을을 정비、거기에 수반하는 생활 용수의 정비등、 짧은 시간내에 마을의 골격을 만들었습니다。그외에도、치수사업、산업의 창출、학문의 장려등、훌륭한 집정자로서 활약했습니다。
마에다 케이지
마에다 케이지
가게카츠를 섬기는 가부키모노(별난 사람)으로 불리던 무장입니다。
만화「하나노케이지」의 주인공으로、가가 100만석의 마에다 토시이에의 조카가 됩니다。문무겸비의 뛰어난、나오에 카네츠구와 친교가 있어 우에스기 가게카츠의 가신이되어、요네자와의 도모리 에 거처를 마련했습니다。전국의 여러 무장들과의 일화나 기행은 셀수 없을 만큼、지금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마에다 케이지 공양탑
마에다 케이지 공양탑
마에다 케이지 공양탑(도모리젠코지 내)
반세쵸 도모리에 있는 쇼신잔젠코지는、신곤슈부잔 파의 사원으 로 데와젠코지로도 불리고 있습니다。창립은 다이도2년(807년)지어져、또、나가이 토키히로가 재건 했다고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경내에는「마에다 케이지 공양탑」이 있고、매년6월에 공양제가 행해집니다。근처에는 케이지가 만년을 지낸 암자의 자취나 식용수 로 사용했던 「케이지 시미즈(샘)」등、마에다 케이지와 인연이 있던 연고지가 여기저기 있습니다。
우에스기 요잔
우에스기 요잔
요네자와(米沢)시 우에스기 박물관(上杉博物館)
에도시대、굴지의 명군으로서 알려져 있습니다。
1751년、타카나베 번(미야자키현)、아키즈키 다네미츠의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10세때 요네자와 번(영)8대 영주 우에스기 시게사다의 딸 요시공주와 결혼 부마(데릴사위)가 되었습니다。
요잔은17세때 대를 이어 상속 했습니다만、당시의 요네자와 번은 막대한 빚을 지고있어、궁핍한 처지에 있었습니다。이 궁핍한 번을 구하기위해、「대 검약령」을 명하고、본인도 일상의 식사는 국 한그릇 반찬 한그릇、평상 시의 옷은 목면으로 솔선해서 절약에 임했습니다。
또、농업의 장려나 뽕나무재배와 누에고치를 장려하고、무사의 부녀자에게 베틀을 습득시켜、데와노요네자와 오리(방직)로서 전국에 팔았습니다。요네자와 오리(방직)는、지금도 요네자와의 명산품으로 되있습니다。

요잔은 일본 안에서도 명군으로서 유명합니다。군주선제 시대에 있어서、 군주로서의 마음가짐을 기록한「덴코쿠노 지(글)」를 남겼습니다。
 一、국가는 선조로 부터 자손에 전해 주어야 되는 국가로서 내 개인의 것으로 하면 안된다
 一、국민은 국가에 속한 국민으로서 내 개인의 것으로 하면 안된다
 一、국가국민을 위해서 된 군주이므로 너를 위한 국가국민이되면 안된다

이 말씀처럼、요잔은 국민을 위해 힘을 쓴 생애를 보냈습니다。
큰 신문사에서2007년、일본의 지방자치단체장들에게「이상의 리더 」앙케이 트에서 우세스기 요잔이1위에 뽑혔습니다。
또、35대 미국 대통령、죤・F・케네디씨가「세계에서 존경하는 정치가」의 한사람으로서 요잔을 거명했습니다。그런 관계로、2014년 가을、캐롤라인・케네디 주일대사가 개인적으로 요네자와를 방문했습니다。

「하면된다 안하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이루지 못하면 사람노릇도 못한다」

는 요잔이 남긴 유명한 말입니다。
다테 마사무네
다테 마사무네
센다이시(仙台市) 박물관
다테 마사무네 24세 까지 요네자와에서 살았습니다。
요네자와는 예로부터 다테가의 영지였습니다。전국무장・다테 마사무네는 요네자와 성에서 태어나、24세때 도요토미 히데요시 (풍신수길)의 명에 따라 센다이 이와데 산성으로 이주 당하기 전까지 청년기를 요네자와에서 보냈습니다。

Date Masamune’s birth place.
다테 마사무네 탄생지
다테 마사무네 탄생지
마츠가사키 공원에 있는「다테 마사무네 탄생지」의 비석입니다。 다테시대의 요네자와 성도 여기에 있었다고 여겨졌지만、2001년의 요네자와시 교육위원회의 조사에 의하면、다테야마 성(舘山城)、 또는 다테야마성 근처에 존재하지 않았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